화가의 길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에 다녀왔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과 공동기획한 전시로, 에드워드 호퍼의 (작가로서의) 과묵하고도 치열한 여정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SeMA - 전시 상세
서울시립미술관은 모두가 만나고 경험하는 미술관입니다. 서울 근현대사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정동 한가운데 위치한 서소문본관은 르네상스식 옛 대법원 건물과 현대 건축이 조화를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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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은 덕수궁 돌담길에 위치하고 있어, 비단 전시뿐 아니라 운치있는 산책과 데이트 코스로도 제격이다.
미세먼지 없는 좋은 날에는 미술관 앞뜰에 머무르며 여유를 만끽하기에도 좋다.
다만 미술관이라면 있을법한 정원이 빈약하여 앞뜰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자못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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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시관에 방문했을 때에는 날이 좋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미술관의 외벽이 짐짓 중후한 운치를 풍기었다.
본 전시는 30분 텀으로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있는데, 전시장 앞에 싸인이 비치되므로 줄을 서 있다보면 정시에 입장가능하다.
표를 몇 차례 보여주고 입장권 팔찌를 받아들 때, 관람 순서는 2-3-1이라고 얘기해주었다.
그러나 장내로 들어서자 순서 없이 보셔도 된다는 안내를 듣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순서대로 보는 게 좋다.
그래야만 작가의 여정을 처음부터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20세기 초의 현대화와 현대인의 정서를 다양한 방식의 작품으로 표현해낸 세계적인 아티스트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거장이고, 혹은 뉴욕을 가장 잘 표현해낸 화가라고도 한다.
유명한 몇몇의 그림들에 대한 인상으로만 에드워드 호퍼를 대강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작가를 이미지로만 기억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도 느꼈다.
위키페디아에 따르면, 사실주의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였고, 유화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수채화가와 에칭에도 능했다고 하며, 시적인 의미를 평범한 주제에 반영하여 일종의 드라마를 연상케 내러티브 해석을 유도한다고 한다.
어쨌든, 2층 첫 전시실에 들어서면, 손모양이나 근육의 모양 등을 수도 없이 고쳐그렸던 작가의 초기의 스케치들부터 관람할 수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시도한 습작들로부터 그의 치열함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연필, 목탄, 펜, 수채, 유채 등 그림 도구뿐 아니라 에칭이라는 프레스 기계를 사용하여 만들어낸 판화까지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 작품들은 전시의 풍성함을 느끼게 하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한편, 작가가 파리에서 그린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는데, 알려진 작품들이 아닌 그의 새로운 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현지에서 그려낸 화풍의 변화, 작가의 시선의 흐름, 타국에서 그가 누린 햇빛과 시간적 여유까지도 느껴지는 것만 같다.
“Great art is the outward expression of an inner life in the artist, and this inner life will result in his personal vision of the world.”
― Edward Hopper
위대한 예술은 작가의 내적 삶을 표출하는 것이며, 이 내적 삶은 곧 세상에 대한 개인적 비전으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이를 반영하기라도 한듯, 작가가 뉴욕에서 그려낸 작품들은, 그의 철학이 어떤 식으로 그림에 반영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의 침착한 관찰과 치밀한 묘사에 대한 집착은 결국 자신을 표현해 내기 위한 치열함이 아니었던가 싶다.
또한, 풍경 이상의 내러티브와 자신의 감정을 그림 속에 담아내려고 했던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는 빛과 그림자를 기가 막히게 잘 표현해내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3층에 전시된 작품들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확연히 보였다.
사진으로 남길 수는 없었으나,"도시의 지붕들", "철길의 석양", "이층에 내리는 햇빛" 등 대작은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매료된 듯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오래 감상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밤의 창문"이나 "통로의 두사람"처럼 상상력을 자극하고 내러티브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들이 아주 좋았다.
안타깝게도 2층과 3층의 전시실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으나, 1층은 사진을 찍는 것이 허용된다.
1층에서는 에드워드 호퍼의 와이프였던 조세핀 호퍼를 그림 그림들 및 에드워드 호퍼의 일러스트들을 관람할 수 있다.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일러스트를 그렸다고 하는데 매우 현대적이고 뉴욕적인 느낌이 물씬 났다.
흥미롭게 본 또다른 작품들은 작가가 그린 조세핀 호퍼의 모습들이다.
많은 관람객들이 전시실 전면에 걸린 햇빛속의 여인이라는 작품에 몰리는 분위기였으나, 정작 내 눈길을 끈 것은 그가 그린 조세핀 호퍼의 잠자는 모습들이었다.
조세핀 호퍼는 에드워드 호퍼와 같은 뉴욕예술대학을 나왔을 뿐더러 촉망받는 예술가였으나, 결혼 후 에드워드 호퍼의 강력한 예술적 사회적 지지자가 되었던 것 같다.
거의 2,500여점에 이르는 작품들과 장부들, 작가 생전의 세세한 기록의 아카이브를 휘트니 미술관에 전달한 것이 바로 조세핀 호퍼였다고 한다.
삶의 동반자뿐 아니라 영감의 원천이었고 강력한 예술적 후원자였던 조세핀 호퍼의 잠든 모습이 에드워드 호퍼에게는 어떠한 감정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두점의 그림으로부터 왠지 모를 슬픈 정서를 느꼈다면 그것은 단지 독자의 해석에 불과할 것인가.
“If you could say it in words, there would be no reason to paint.”
― Edward Hopper
말로 전할 수 없는 것을 그리고자 했던 작가의 말을 상기하자면, 정답이 무엇이든 작품에 숨겨진 서정을 읽어내려 하는 것이 위대한 작가에 대한 예의일는지도 모른다.
전시는 8월 30일까지 이어지므로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개인전을 찾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작가의 길을 따라 여행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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